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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야기

'호나우지뉴' 브라질의 외계인 발롱도르 소개&정리

by 토우미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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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오늘은 외계인이라 불리는 브라질의 전설 '호나우지뉴' 소개&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본명:호나우두 지아시스 모에리라 (자신의 선수명을 호나우지뉴라고 정한 이유는 자신의 본명과 같은 이름이면서, 당대 브라질 최고의 공격수인 호나우두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작은 호나우두라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호나우두도 1994 FIFA 월드컵 미국과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 각각 호나우두(큰 호나우두) 와 호나우두 기아루라는 동명이인 선배들 때문에 호나우지뉴라는 이름을 썼다가 훗날 호나우두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1980년 3월 21일 (43세) 브라질에서 태어났다.
키 181cm, 몸무게 95kg 
포지션은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로 양발을 모두 잘 쓰는 양발형 선수였다.

호나우지뉴 클럽 커리어
프로
• 그레미우 (1998~2001)
• 파리 생제르맹 FC (2001~2003)
• FC 바르셀로나 (2003~2008)
• AC 밀란 (2008~2011)
• CR 플라멩구 (2011~2012)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12~2014)
• 케레타로 FC (2014~2015)
• 플루미넨시 FC (2015)
• 포르치노스 FC (2023~)

호나우지뉴 대회 커리어
• 그레미우 (1998~2001)
코파 술 미나스: 1999
캄페오나투 가우슈: 1999

• 파리 생제르맹 FC (2001~2003)
UEFA 인터토토컵: 2001

• FC 바르셀로나 (2003~2008)
라리가: 2004-05, 2005-06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5, 2006
UEFA 챔피언스 리그: 2005-06

• AC 밀란 (2008~2011)
세리에 A: 2010-11

• CR 플라멩구 (2011~2012)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2011

•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12~2014)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013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013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2014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월드컵: 2002

• 코파 아메리카: 199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5

• 브라질 U-23 축구 국가대표팀
올림픽 동메달: 2008

• 브라질 U-17 축구 국가대표팀
FIFA U-17 월드 챔피언십: 1997
남아메리카 U-17 챔피언십: 1997

호나우지뉴 개인 수상
• 발롱도르: 2005

• 발롱도르 드림팀 2군: 2020
• FIFA 올해의 선수: 2004, 2005
• FIFPro 올해의 선수: 2005, 2006
• FIFA FIFPro 월드 XI: 2005, 2006, 2007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2005-06
• UEFA 올해의 공격수: 2004-05
• UEFA 올해의 팀: 2004, 2005, 2006
• UEFA 올해의 궁극적인 팀: 2015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2002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볼: 199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론즈볼: 2005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슈: 199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5
• FIFA 클럽 월드컵 브론즈볼: 2006
• FIFA 클럽 월드컵 득점왕: 2013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05-06
• 리그 1 올해의 골: 2002-03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 2003-04, 2005-06
• 라리가 도움왕: 2005-06
• 트로페오 EFE: 2003-04
• 세리에 A 도움왕: 2009-10
• 세리 A 팬 선정 올해의 선수: 2012
• 세리 A 올해의 팀: 2011, 2012
• 세리 A 도움왕: 2012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도움왕: 2012, 2013
• 캄페오나투 가우슈 득점왕: 1999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2004, 2005
• 옹즈도르: 2005
• 옹즈 드 옹즈: 2002, 2004, 2005, 2006
• ESM 올해의 팀: 2003-04, 2004-05, 2005-06
• FIFA 100: 2004
• 골든풋: 2009

홍보: FC 바르셀로나 (2016~ / 앰버서더)

호나우지뉴는 브라질의 축구 선수로 2002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최전성기에는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로서 2005년 발롱도르, 2004~2005년 FIFA 올해의 선수,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2006년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등 개인상을 혼자 모조리 쓸어담았다.

축구 역사상 단 9명뿐인 월드컵 우승, UCL 우승, 발롱도르 수상을 모두 달성한 선수다. 이런 실력에 특이한 외모, 웃는 모습까지 더해 외계인이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로 인상적인 캐릭터를 지닌 선수였다.

다만 자기관리 실패로 전성기가 오래 가지 못하였기에 아쉬움도 남는 선수이다. 그래서 축구를 논할 때 호나우지뉴의 전체 커리어는 언급되지 않는 편이지만 그의 최전성기는 자주 언급이 된다.

호나우지뉴는 유소년때 대주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13살 때 팀과의 경기에서 혼자 23골을 넣는 것이 언론에 보도가 된 것이다. 이후 형이 있던 그레미우와 계약을 하면서 어린 나이임에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1997년 U-17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계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호나우지뉴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2선 공격자원, 그중에서도 주로 왼쪽에서 프리롤로 움직이는 플레이메이커 성향의 윙어였다. 전성기를 기준으로 호나우지뉴는 테크닉, 신체 능력, 축구 지능, 킥, 패스, 골 결정력 등 공격형 미드필더 내지 플레이메이커 윙 포워드한테 요구되는 거의 모든 덕목들을 최상위 레벨로 보유했던 완전체 선수였고 그중에서도 드리블과 볼 터치는 당대 최고를 넘어서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무서운 선수였다.

일반적으로 선수는 십수년 이상 훈련을 거듭하며 정형화된 패턴이나 습관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아르연 로번의 경우 우측면에서 중앙으로 꺾어들어와서 왼발 슈팅이 주특기이므로 수비 측은 그 기술을 특히 주의하면 된다.그러나 호나우지뉴는 축구선수가 구사 가능한 거의 모든 종류의 개인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에 돌파에 능한데, 킬패스도 자유자재로 뿌릴 수 있고 여차하면 자기가 직접 때려버리니 예측이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어렵다. 남들은 연습경기나 훈련장에서 연습할만한 개인기를 실제 경기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무언가 특기가 있고 약점이 있다기보다 그냥 발로 공을 다루는 행위 자체를 잘했다. 오죽하면 "전성기의 호나우두는 알아도 못 막았지만, 호나우지뉴는 정말 뭘 할지를 몰라서 못 막았다." 라고 말을 할 정도로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선수였다.

호나우지뉴 언사
펠레:''호나우지뉴가 뛰어난 선수라는 점은 트릭을 사용할 때와 단순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때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0:0일때 호나우지뉴는 오직 패스에 집중한다. 그가 트릭을 사용하는 것은 경기를 이기고 있을 때 뿐이다.''

리오넬 메시:''저는 제가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호나우지뉴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저의 첫 골을 도와준 그를 기억합니다. 저는 단지 그의 유산을 이어받기 위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1(출처:연합뉴스)

호나우지뉴는 2020년 3월 6일 파라과이수도 아순시온주 호텔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브라질 여권이 아닌 아는 사업가가 선물한 파라과이 여권을 사용한 것. 이때 호나우지뉴는 자국 여권 자체를 몰수당한 상태였는데, 이유는 호나우지뉴가 브라질 내 보호구역에 불법으로 부두를 증축한 혐의로 체포되어 벌금이 청구되었는데 벌금+이자를 갚지 않자 여권을 몰수한 것이다. 결국 위조 여권을 사용한 혐의로 체포되어 교도소로 갔다.

본인이 선물받은 여권이라 당연히 쓸 수 있는 여권인줄 알았다며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도 호나우지뉴가 바보라 입국심사 자체를 의례적인 것으로 여겼다며 선처를 부탁했다. 그런데 정작 브라질과 파라과이는 국경 간 협약을 맺어 입국할 때 여권이 필요없다고 한다. 그래도 교도소에서는 친선배 풋살 대회에 출전해 5골 6도움을 기록하는 등 감방 동료들과 잘 지냈다고 하며, 이때 축구화가 없어 출전하지 못할 뻔했는데 교도관이 축구화를 빌려주었다고 한다.

이후 20020년 4월 7일 보석금을 내고 출소했다. 교도소 동료들이 출소할때 아쉬워하며 출소 기념 깜짝 바베큐 파티도 열어주고 호나우지뉴도 다시 한번 오겠다는 농담을 남기고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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